증거 불충분 믿음에 관하여 (on belief with insufficient evidence)

paper(텍스트) · 2024

마을이 변두리가 어수선합니다.

 

: 자네 그거 아나? 그 백야(白夜) 밑에는 영원의 소금이 자란다나 뭐라나

: 영원의 소금이 뭐에요?

: 영원의 소금이 영원의 소금이지. 이 나이에 맛이라도 봤으면 좋겠네.

: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 믿기 싫으면 믿지 말게나, 옛적부터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소문이니,

그 아는 자들은 다 어디 있는지 아나? 나도 모르네, 다만 아무도 시체를 본 사람은 없다네

: 정말 영원해지기라도 한 거예요?

: (…)

 

귀가 여섯 개, 눈이 네 개 / 사지정상(四肢正常)

 

 

엿듣던 나그네는 발걸음을 띄웁니다. 백야에 영원의 소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 소문으로 듣던 소금을 얻기 위해

: 야 이놈아! 거기 안 서! 이 쳐 죽일 놈의 거지새끼야!

마을의 양 한 마리를 훔칩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날이 더욱 많아 보이는 양 한 마리와 함께 느티나무 지팡이 들고

백야를 향한 미지수(未知數)의 용감한 돛단배를 띄웁니다.

 

녹아내리는 촛농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며칠 밤새 연속되어 단단히 식어버린 밤이 다가왔습니다.

양의 털로 체온을 유지합니다.

양의 피부가 닿을 때마다 환청처럼 들리는

: 야 이놈아! 거기 안 서! 이 쳐 죽일 놈의 거지새끼야!

 

귀가 여섯 개, 눈이 네 개 / 사지정상(四肢正常)

 

 

가파르고 거대한 돌담이 나그네를 지그시 내려다봅니다.

(나그네는 가파르고 거대한 돌담을 지그시 올려다봅니다)

이 거대한 돌담을 넘어가면 백야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홀로 돌담을 기어 올라갑니다. 손과 발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돌담이 나그네에게 준 표상. 검붉은 사지 반할(半割)손상.

양은 단단한 네 굽으로 곧 잘 알아서 올라 가는군요. 마치 제 고향처럼요.

 

돌담이 나그네에게 준 두 번째 표상.

그날 밤은 악몽을 꾸었습니다.

 

일곱 명의 마을 주민

군인처럼 굳은 자세를 한 채 흥건한 붉은 카펫 위에 횡렬 종대로 누워있었다.

어린아이, 노인, 청년 인류의 진화 컬렉션처럼 보이는 한 공간의 다양한 시간

 

귀 열네 개 / 눈 영 개 / 사지정상(四肢正常)   

 

 

옹기종기 모여 구경하는 사람들. 마치 박물관이라도 된 듯한 상황

왜 누워있을까, 누가 저렇게 흠잡을 부분 없이 나열해 놓았는가,

죄를 지었는가, 사고를 당했는가, 무음과 소음이 공존하는 공간

 

문득 손에 쥔 무딘 칼 때문에 언성을 들으며 칼 심부름을 받은 종은 네 사지로 다급히 뛰어갔다.

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왜 이렇게 편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인류의 시초가 된 듯이 사지로 달리는 육체를 마지막으로

 

수면 직후 기억의 한계

눈 부신 햇빛과 함께 눈을 뜹니다.

기록하지 못한 표상은 공기 중으로 흩어집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저 멀리 아득한 그늘이 보입니다.

온 세상의 빛을 등지는 거목(巨木) 뒤에 은은한 짠 내가 풍겨옵니다.

 

귀가 두 개, 눈이 두 개 / 사지정상(四肢正常)

 

 

아무래도 언제부터였을까 계속되는 하얀 어둠.

변두리 존재했던 낭설이 표피를 뜯고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느티나무 지팡이를 지렛대 삼아

숲처럼 느껴지는 거목의 뿌리 사이 사이를 넘어갑니다.

육체에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하얀 어둠이

코를 찌르며 심장을 조여옵니다. 외로운 나무에 울리는

거대한 심장 소리는 새와 벌레들을 내쫓습니다.

새와 벌레들은 나그네의 파동을 피해 깊은 어둠 속으로 대피하는 사이

나그네는 서서히 새하얀 영원의 소금을 향해 다가갑니다.

 

거목(巨木)이 나그네에게 준 세 번째 표상.

 

: 자네 그거 아나? 그 백야 밑에는 영원의 소금이 자란다나 뭐라나

: 영원의 소금이 뭐예요?

: 영원의 소금이 영원의 소금이지. 이 나이에 맛이라도 봤으면 좋겠네

: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 믿기 싫으면 믿지 말게나, 옛적부터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소문이니,

그 아는 자들은 다 어디 있는지 아나? 나도 모르네, 다만 아무도 시체를 본 사람은 없다네

: 정말 영원해지기라도 한 거예요?

: (…)

: (…)

 

귀가 여섯 개, 눈이 네 개 / 사지정상(四肢正常)

 

 

날씨가 화창합니다. 하늘에서 메마른 바위가 폭우처럼 내립니다.

 

거대한 석판 조각이 땅에 던져 내리꽂습니다. 운이 좋게 피했습니다.

:음메에에에에

(야 이 놈아! 거기 안 서! 이 쳐 죽일 놈의 거지새끼야!)

 

두 번째 거대한 석판 조각이 땅에 던져 내리꽂습니다. 하마터면 깔려 죽을 뻔했습니다.

:음메에에에에

(야 이 놈아! 거기 안 서! 이 쳐 죽일 놈의 거지새끼야!)

 

세 번째 거대한 석판 조각이 땅에 던져 내리꽂습니다. (…)

:음메에에에에!!!!

(야 이 놈아! 거기 안 서! 이 쳐 죽일 놈의 거지새끼야!)

 

 

귀가 찢어지듯 우는 양의 울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거둬지는 거목의 그늘과 함께 눈을 뜹니다.

머리맡에 떨궈진 느티나무 지팡이를 다시 짚고 곧이어 뿌리의 그늘을 벗어납니다.

 

태어나서 본 백색 중 가장의 백색

(스으 스으슥 스스스스륵)

분명히 만져집니다

모든 것들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뜨거울 정도로 따스하며 고운 모래 같습니다.

(음메에에에에)

태어나서 본 백색 중 마지막 백색

 

오늘 밤은 따스한 어둠입니다.

이날 밤은 유독 어두워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겠습니다.

다음 날 밤도 유독 어두워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겠습니다.

 

‘신이시여, 어디 계시나요. 이제 저는 어떡해야 합니까..

제발 저에게 지혜와 은총을 주시옵소서.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여. 부디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나그네에겐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음메에에에에) 점점 멀어지는 양의 울음소리

 

귀가 두 개, 눈이 영 개 / 사지 비정상(四肢非正常)

 

: 자네 그거 아나? 그 백야 밑에는 영원의 소금이 자란다나 뭐라나

: 영원의 소금이 뭐예요?

: 영원의 소금이 영원의 소금이지. 이 나이에 맛이라도 봤으면 좋겠네

: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 믿기 싫으면 믿지 말게나, 옛적부터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소문이니,

그 아는 자들은 다 어디 있는지 아나? 나도 모르네, 다만 아무도 시체를 본 사람은 없다네

: 정말 영원해지기라도 한 거예요?

: (…)

: (…)

 

귀가 여덟 개, 눈이 네 개 / 사지 비정상(四肢非正常)